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독일의 덴마크 침공 === [youtube(/ltcs9C0nle0)] 시간상으론 노르웨이 침공부대 출항 이후인 4월 9일 새벽 2시, 덴마크 주재 독일대사가 자고 있는 덴마크 외무장관을 깨우고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덴마크에 쳐들어오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우리 독일이 이웃 우방국 덴마크를 지켜주기 위해 덴마크에 독일군을 급히 파병했으니 이를 허용해달라."는 것이었다.(독일은 1차대전때도 벨기에를 침공하며 '프랑스가 벨기에를 침공했으니 벨기에를 구원하겠다' 라고 아무도 안 믿던 헛소리를 했었다) 외무장관은 당연히 그런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 않고 독일의 전면침공 사실을 인지, 이를 상의하고자 시간을 번 다음 급히 왕궁으로 달려가 국왕과 면담했다.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Christian 10)는 독일의 통첩에 격분했으나, 현실적으로 덴마크군의 총병력은 한개 사단도 채우지 못했고 중장비도 거의 없었으며, 지리적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게다가 독일의 적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덴마크가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나라였다. 1차 대전 발발 직후 덴마크는 중립을 선언하고 카테가트 해협에 기뢰를 쏟아부어서 배가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런데 독일 해군은 킬 군항에서 주력 함선들을 빼서 빌헬름스하펜에 옮겨둔 상태였고, 그 이후의 이동도 [[킬 운하]] 운하의 존재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유틀란트 해전]]을 치르는데 덴마크의 조치는 눈꼽만큼도 방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협상국은 발틱해 해로가 막혀버리는 바람에, 영불-러시아간 해상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갈리폴리 전투|오스만 제국에게도 시비를 걸어야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중립국을 사칭하고 독일에 납작 엎드린 꼴이었다. 이에 격노한 영국은 이 경험으로 유럽의 중립국도 말만 중립국일 뿐이라고 느끼고, 주요 중립국에 대한 전시전략계획을 수립한 뒤 노르웨이 침공 당시 노르웨이에게 실제로 시행하게 되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가 손을 벌리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과 노르웨이의 국왕이자 크리스티안 10세의 동생이었던 [[호콘 7세]]는 런던 망명이 허용되었다. 이런 현실적 문제로 인해 국왕과 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독일의 요구조건을 수용했다. 독일군은 덴마크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기도 전에 국경을 넘었고, 이 과정에서 덴마크군의 소규모 병력과 작은 교전도 있었다. 이러한 소규모 교전으로 독일군 20명, 덴마크군 26명이 전사했다. 이 덴마크군 소규모 병력의 하루동안의 저항을 다룬 영화 [[4월 9일(영화)|4월 9일]]([[https://youtu.be/UmcttiebIN0|예고편]])이 있다. 변변찮은 대전차 무기나 수류탄도 없이 소총[* 이것마저도 돈이 없어 탄창을 1~3개 정도만 줄 수 있었다.]과 기관총만으로 [[2호 전차]]나 [[경정찰장갑차|Sd.Kfz. 222]]에 맞서는 덴마크군의 분투가 보는 사람 입장에서 참 눈물겹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덴마크군은 저항을 중지했고, 독일군은 덴마크 전역에 진주하게 된다. 그리고 덴마크는 독일의 보호국으로 전락한다([[덴마크 보호령]]). 다만 독일은 덴마크가 요구조건을 수용해준 것에 대한 대가로 덴마크 내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물론 독일군에 의한 불심검문이나 단속 등이 쏟아져나오고 물자도 많이 뜯어가 덴마크인들의 불만을 샀지만 독일의 내정불간섭 약속은 대전 중반까지 충실히 지켜지는 듯 했으'''나''', 독일은 1943년 8월 덴마크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덴마크 정부를 해산시켜버린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 이전에도 독일이 아주 개입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는데 크리스티안 10세는 압력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자국 내 유대인들의 스웨덴 망명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다른 부분에서의 내정간섭에 대해서도 "'''아니 님들이 우리나라 지켜주려 온거지 우리나라 지배하러 온건가여?'''" 하면서 독일측을 데꿀멍시키기도 했고, 히틀러가 국왕의 72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기나긴 전문을 보내자 'Spreche Meinen besten Dank aus. Chr. Rex', 직역하면 '매우 고맙소. 크리스티안 10세.'가 전부인 초간략 답장으로 화답하여 히틀러의 혈압을 올려주기도 했다. 이때 덴마크는 약 6시간 만에 항복하여 2차 대전 동안 가장 단기간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